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앱이 넘쳐나는 시대에, 노트 앱을 하나 더 만들다

AI 덕분에 앱 하나를 하루 만에 만들 수 있게 됐고, 나도 노트 앱을 만들었다. HYPATIA가 코드 버전을 관리하던 작은 도구에서 읽기 앱이 되기까지, 그리고 천천히 가는 법을 배운 지난 반년의 이야기.

Sushi · 약 7분읽기 시작 ↓

저녁에 집에 돌아와 WeChat을 열어 보니, Joe가 APPSO라는 공식 계정의 글 「AI가 앱 과잉의 시대를 만들고 있다」를 보내 놓았다. a16z의 최신 뉴스레터 So Many Apps, So Little Time을 소개하는 글이었다.

Joe의 메시지

글에는 샤오훙수에서 ‘Vibe Coding’을 검색한 스크린숏이 인용되어 있었는데, 검색 결과는 전부 이런 글이었다.

왜 vibe coding으로 만든 제품은 결국 다 일기, 가계부, 습관 트래커, 노트 앱이 되는 걸까.

창업하겠다, 내 제품을 만들겠다고 그렇게 오래 말해 왔다. 그런데 내가 만든 걸 돌아보니, 나 역시 일기와 가계부와 노트 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HYPATIA도 결국은 노트 앱 아닌가.

a16z 보고서에 따르면, 새로 나온 소프트웨어의 수는 몇 배로 늘었지만 소프트웨어가 실제로 벌어들이는 매출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소프트웨어에는 사용자가 거의 없다.

파이는 그대로인데 승자가 독식하는 것도 아니다. 새로운 승자가 아예 나오지 않은 것이다.

01HYPATIA의 시작

HYPATIA를 만들게 된 건 어떤 의미에서 우연이었다.

올해 8월 말, 나는 친한 친구의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거기에는 온갖 데이터와 코드가 뒤죽박죽이었다. 데이터와 코드의 버전을 관리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없을까 생각하다가, 작은 제품 하나를 대충 vibe coding으로 만들어 보았다.

초기의 HYPATIA: 연구 프로젝트의 데이터와 코드를 노드 그래프로 그리고, 오른쪽 채팅이 노드 하나를 설명한다

초기의 HYPATIA: 노드마다 설명, 입출력, 코드, 테스트가 있고, 오른쪽의 에이전트가 문서를 고쳐 새 버전을 커밋한다

다 만들고 나니 친구가 말했다. 논문도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나는 리더를 만들기 시작했다.

만들다 보니, 코드 버전을 관리하던 부분은 너무 미숙하고 별로 쓸모도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오히려 리더가 더 많은 사람에게 쓸모 있을지도 몰랐다. 게다가 내가 늘 좋아했고, 꽤 잘 아는 분야이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 나는 종이 없는 공부를 열심히 밀어붙였다. 선생님들도 너그러워서, 내가 태블릿을 학교에 가져와 필기하고 공부하는 걸 그냥 두셨다. 내 가장 큰 오락은 App Store에서 온갖 생산성 앱을 뒤져 보는 것이었다.

대학에 가기 전, 나는 한동안 MarginNote에서 일하며 고객 지원과 마케팅을 맡았다. Joe를 알게 된 것도 그때였다.

노트 앱이라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일지도 몰랐다.

막상 손을 대 보니 놀라웠다. 예전 같으면 이런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데 몇 달은 걸렸을 텐데, 이제는 며칠이면 되는 것 같았다.

그것도 전업으로 매달린 며칠이 아니었다. 매일 프롬프트 몇 개를 보내 놓고 출근하는, 그런 며칠이었다.

조금 설레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못 하던 많은 일들을 이제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전에도 나는 2주를 못 넘기고 내팽개친 프로젝트가 너무 많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나 자신에게 한 가지를 요구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계속할 것.

시장도, 전망도, 내가 하는 일이 의미가 있는지도 생각하지 않는다.

계속한다.

02한 프로그래머의 방황

시간을 올해 2월로 되돌려 보자. 나는 휴가를 내고 설을 쇠러 집에 갔다.

집에 온 지 이틀도 안 돼서 Joe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제품을 하나 만들었는데 한번 보겠냐는 것이었다.

Tencent Meeting으로 연결하자, Joe는 자기가 만든 동영상 인덱싱 제품을 보여 주었다. 나도 영상 편집을 조금 해 봐서, 소재 관리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잘 안다. Joe의 소프트웨어로는 로컬 소재를 아주 쉽게 관리할 수 있었다.

얼마나 걸렸냐고 묻자 Joe가 말했다. “하루.”

바로 며칠 전만 해도 나는 회사에서, AI에게 코드를 통째로 맡겨서는 안 된다, 옛날 방식의 코딩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반성하던 참이었다. 이제는 내가 AI를 쓰는 방식이 틀렸던 건 아닐까, 너무 조심스러웠던 건 아닐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서사에 푹 절여진 말투로 나 자신에게 말했다.

브레이크를 떼어 내고, 액셀을 끝까지 밟듯이 AI를 쓰겠다.

집에 오기 전에 회사에서 PPT를 만드는 skills를 한 세트 만들어 두었는데, 꽤 쓸 만하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PPT 만드는 소프트웨어로 만들어 보자.

거금을 들여 Claude Max 계정 두 개를 구독하고 OpenRouter 모델 크레딧을 200달러 넘게 태운 끝에, 온갖 순서도를 생성할 수 있는 AI 파이프라인을 만들어 냈다.

물론 그건 쓰레기 더미였고, 처음에 만들려던 것과도 전혀 달랐다.

하지만 나는 무서운 걸 보았다. 코드를 전혀 보지 않고도 프로젝트 하나를 만들 수 있다는 것.

무서운 건 내가 할 줄 아는 것이 갑자기 값어치를 잃었다는 사실만이 아니었다.

무엇이 본질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코드를 쓰는 게 본질이 아니라면, 무엇이 본질일까? 아이디어? 판단? 안목? 그것들은 또 무엇일까?

나는 딱 잘라 말할 수 없었다.

나를 더 불안하게 한 건 어설픈 경제학 지식이었다. 할 줄 아는 사람이 열 배로 늘면, 그 기술은 더 이상 값어치가 없다.

오늘의 컴퓨터공학은 어제의 토목이 되는 걸까.

그 몇 달 동안 나는 멈출 수가 없었다.

오랫동안 Claude를 두세 개씩 구독했다. 절정기에는 Claude Max 계정을 여섯 개나 굴렸다. AI에 쓰는 돈이 월세보다 많았다.

회사에서는 ‘토큰 황제’라는 별명을 얻었다.

일하는 틈틈이 주사위를 굴려 점심 메뉴를 정해 주는 앱도 만들고, CFA 시험 준비를 도와주는 앱도 만들었다.

어느 것도 2주를 넘기지 못했다. 그리고 당연히, 어느 것도 완성하지 못했다.

나는 바빴지만, 무엇 때문에 바쁜지 알 수 없었다. 집에 갈 때마다 부모님이 보는 건 노트북을 끌어안고 미간을 잔뜩 찌푸린 나였다. 무엇 때문에 바쁘냐고 물으셔도, 나는 늘 대답하지 못했다.

모든 걸 다 한 것 같은데, 사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사무실 문을 나서서 걸으며 멍하니 인생을 생각하던 때가 자주 떠오른다. 사람은 반드시 죽고, 삶은 유한하다. 나는 대체 무엇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03사는 법을 배우다

그 무렵, 나는 자꾸 부엌으로 숨어들었다.

지난번에 그랬던 건 대학 시절 스웨덴에서였다. 극야는 어둡고 추웠고, 먹을 것은 더 절망적이었다. 한 지도교수는 감자를 대접해 주었다. traditional food라서. 다른 지도교수는 내 평생 가장 짠 생선을 대접해 주었다. 이것도 traditional food였다. 그 뒤로 나는 이 말만 들으면 PTSD가 온다. 그래서 직접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집이 그리울 때면 반죽을 치대 만두를 빚었다.

그때부터 요리는 나에게 위안이 되었다. 미래는 이렇게 불확실한데, 부엌은 확실하다. 부엌에 익숙해지고 나니, 그곳은 자유로우면서도 확실한 곳이었다. 양념을 조금 더 넣든 덜 넣든 요리를 망치는 일은 드물다. 하지만 불이 충분히 닿기만 하면, 밥은 반드시 익는다.

요리는 쓸모가 있다고 생각했다. 불안을 덜어 주니까.

한 친구가 나에게 취미를 좀 찾아보라고 했다. 나는 필요 없다고 반박했다. 놀 때면 불안하고, 미래는 이렇게 불확실하니까. 친구는 내 반박을 못 들은 척 노래를 한사코 권하더니, 우리 친구 무리를 통째로 노래 선생님에게 소개해 주었다. 한 번 가 보니 꽤 재미있었고, 내 노래의 가장 큰 문제가 하필이면 박자 감각이 없다는 거라는 것도 알게 됐다. 그래도 다시 가기는 귀찮았다.

그래도 그 말이 효과가 있었던 걸까. 일을 시작하자마자 Switch를 샀지만 거의 하지 않았다. 할 때마다 죄책감이 들었다. 일이 너무 많던 어느 시기, “나에게는 취미가 필요하다”는 말이 머릿속에 불현듯 울렸다. 나도 모르게 젤다를 켜서 2주 동안 했다.

2주 뒤, 나는 게임을 그만두었다. 엔딩도 보지 않았다. 물론 재미있었다. 다만 이 게임이 왜 재미있는지,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지 이미 알 것 같았다.

놀기를 무척 좋아하는 또 다른 친구는 나를 계속 바둑 동호회에 끌고 가려 했다. 몇 번을 거절하다가 결국 따라갔다.

나는 바둑을 둘 줄 모른다. 나오는 길에 같이 온 초보자와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 둘 다 이 게임이 꽤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왜 시간을 들여 연습하고 배워야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차피 결국 AI를 이길 수도 없는데.

나중에 나를 데려간 친구에게 물었다. 친구가 말했다. “다른 사람을 이길 수 있잖아.”

참 단순한 대답이었다.

얼마 전, 오래 알고 지냈지만 좀처럼 만나지 못하던 친구와 밥을 먹었다. 한참 이야기하다가 친구가 불쑥 말했다. “너는 뭘 하든 투자 수익률(ROI)을 계산하는 것 같아.”

조금 뜻밖이었다. 나는 나를 그렇게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계산적이지도, 물질적이지도 않은 사람이라고 늘 생각했다.

하지만 그 말은 정곡을 찔렀다.

요리는 불안을 덜기 위해서였다. 젤다는 왜 재미있는지 알아내기 위해서였고, 알아내고 나서는 그만두었다. 바둑을 두면서 내가 가장 먼저 물은 것은, 어차피 AI를 못 이기는데 왜 배우느냐였다.

취미를 찾는 일조차, 누군가 나에게 취미가 필요하다고 해서였다.

그 뒤로 나는 바둑 동호회에 몇 번 더 나갔다.

나는 그냥 노는 게 좋고, 그냥 사는 게 좋은 사람이라는 걸 받아들여 보려 하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마음을 놓고 나니 제품도 더 순조롭게 만들어지는 것 같았다.

HYPATIA를 만들면서 나는 나름의 규칙을 정했다. 프롬프트는 되도록 아침에 일어난 뒤 잠깐만 써서 AI에게 맡긴다. 저녁 시간은 요리와 독서와 노는 데 쓴다.

이 규칙은 자주 깨진다. 하지만 지키려고 애쓰는 동안, 오늘 밤 안에 꼭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없다는 걸 천천히 알게 됐다. 꾸준함의 가능성도 보이기 시작했다. 하루에 문제 하나를 고칠 수 있다면, 1년이면 365개를 고칠 수 있다.

끝없이 몰아붙이면, 하루에 문제를 10개쯤 만들어 낼지도 모른다.

그러고는 2주를 못 버틴다.

04평범한 저녁

처음으로 돌아가서, 나는 WeChat을 닫고 컴퓨터 앞에 앉아 HYPATIA로 Evernote를 조사했다. 지난 20여 년 동안 개인 지식 관리 소프트웨어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꼼꼼히 분석하는 시리즈를 시작했는데, Evernote부터 이야기하고 싶었다. 다만 Evernote는 내가 잘 아는 소프트웨어가 아니었고, 그 뒤에 있는 이야기도 몰랐다. 그래서 HYPATIA에게 관련 자료를 찾아 달라고 한 뒤 읽기 시작했다.

HYPATIA에서 Evernote 조사하기: 영어 원문과 중국어 번역을 나란히 읽고, 오른쪽 채팅이 자료를 프로젝트로 정리한다

Evernote가 한때 끌어모은 입이 떡 벌어지는 투자금을 보았다. 배낭과 티셔츠까지 팔던 작고 아름다운 노트 앱 회사가 벤처 캐피털에 한 걸음씩 휩쓸려, 정리해고와 CEO 교체를 거쳐 끝내 매각되기까지의 과정을 보았다.

작고 아름다운 제품이, 떠밀려 되어서는 안 될 모습으로 자라났다.

망연자실해 있다가 고개를 들어 시계를 보니, 벌써 밤 10시가 넘어 있었다.

깜짝 놀랐다. 이렇게 컴퓨터 앞에서 무언가를 읽어 본 게 정말 오랜만인 것 같았다.

휴대폰으로 공식 계정 글을 볼 때면 늘 몇 번 스크롤하다 닫아 버린다. 궁금한 게 생기면 습관처럼 AI에게 던진다. 가끔 불현듯 의욕이 솟아 논문과 교과서를 잔뜩 내려받고, 가지런히 정리해 두고는, 그러고는 다시는 열어 보지 않는다.

그러니 HYPATIA를 만드는 일에 어떤 의미가 있다고 굳이 믿어야 한다면, 아마 이런 것일 거라고 생각한다.

답이 언제든 손 닿는 곳에 있는 지금도, 우리에게는 여전히 컴퓨터 앞에 조용히 앉아 읽고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할지 모른다.

제품 하나를 평균 하루면 만들어 내는 지금, 우리에게는 천천히 만들고 천천히 고쳐 나가려는 제품이 필요할지 모른다. 꾸준함은 시간이 지나야 증명되지만, 천천히 가는 것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다.

처음에 말한 그 보고서는, 앱이 넘쳐나는 시대에 새로운 승자가 아예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Evernote의 이야기를 다 읽고 나니, 나는 그게 그리 두렵지 않았다. 승자였던 Evernote도 결국 자기 자신을 지켜 내지 못했으니까. HYPATIA는 아마 승자가 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되지 않으면 된다. 천천히 만들면 된다.

당신에게도 내려받고, 정리해 두고, 다시는 열어 보지 않은 논문 더미가 있다면, HYPATIA를 한번 써 보길 바란다: https://note.parkourlabs.io/?ref=CBRCAXH7 . 아직 거칠고, 매일 아침 조금씩만 고치고 있다. 겪은 문제나 원하는 기능이 있다면 언제든 알려 주길 바란다. 적어 두었다가 하나씩 고쳐 나가겠다.

다음에는 개인 지식 관리 소프트웨어 20년에 관한 시리즈를 Evernote부터 써 보려 한다. 읽고 싶다면 팔로우하거나 블로그 RSS를 구독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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